야사와 괴담으로 읽는 조선시대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이 여성들은 시도 잘 짓고 외모도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처럼 아름답다. 남성들 역시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온화하며 우아한 기품이 넘쳐흐르는 풍류남아이다. 하지만 다른 고전 소설들의 인물이 재자가인인 것과 애정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재자가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영웅 소설에서는 영웅의 조건 중 하나로서 제시되지만, 애정소설에서는 그들의 재자가인(才子佳人)성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재자(才子)’와 ‘가인(佳人)’의 두 가지 문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는 곧 ‘정신’과 ‘육체’의 문제에 대한 애정소설의 관습을 보여줄 것이다.


30대의 한 주부는 이렇게 주장했다.“솔직히 신사임당의 아들이 율곡이 아니라 망나니였으면 아무리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인정을 받거나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어요? 가뜩이나 아이들 성적표가 엄마 성적표이고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는 게 엄마의 평생 숙원사업인데 신사임당을 매일 보는 지폐에 담는다는 건 자식 사교육 잘 시켜 명문대 보내라는 소리 아닌가요? 신사임당이 50000원 지폐의 주인공으로 도안, 발행되자 여기에 반발한 일부 인사들과 네티즌들은 50000원 지폐 사용 보이콧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백자는 질이 좋고 문양도 아름다워 일본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어요. 일본 영주들은 이삼평을 크게 아껴 많은 지원을 했어요, 이삼평의 자손들은 영주에게 관리들처럼 월급을 받아가며 도자기를 생산했어요. 이삼평이 죽자 일본 사람들은 신사를 짓고 그의 위패를 모셨어요. 이삼평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들면 살고 있어요.


이 시기에 서민 풍속화가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한 것이 이러한 인식의 변화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이면에는 당시 신분 사회의 동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서민 풍속화는 윤두서(尹斗緖)와 조영석(趙榮祏) 등 사대부 화가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바로 이 단계가 피부를 깨끗하고, 뽀얗게 보이도록 하는 단계로 오늘날로 치면, 나 오늘 화장 안 했는데 라고 말하지만, 뽀얗고 촉촉함은 유지하고 있는 화장법? 지도는 조선 시대에 그려진 『도성도』의 전체 모습과 그중 창경궁이 있는 부분을 확대한 것이에요. 지금은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는 각각 담으로 나뉘었거나 떨어져 있는데 지도를 보면 세 장소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그러나 권씨는 신사임당과는 정반대로 제멋대로 사는 탕녀였다.[19] 첩인 주모 권씨의 존재를 알게 된 그녀는 다시 이원수에게 첩인 권씨를 집에 들이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에는 이후 명나라가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게 될 때 임진왜란 당시 5만의 병력을 파견하게 했던 석성이 투옥된 것을 기록한다. 석성의 문인은 조선에 와서도 스승 석성을 구해줄 것을 청했으나 조선 조정은 입으로만 소중화, 재조지은을 외칠 뿐 양씨의 청을 거절하였다.


기록상으로 보면, 중국의 고사를 본떠서 우리의 상황에 맞게 변용한 풍속화이자 고사 인물화(故事人物畫)가 눈에 띈다. <태위공기우도 太尉公騎牛圖>는 최당(崔讜)이 공직에 봉사하다가 말년에 소를 타고 세상을 등지는 모습을 담은 사인 풍속화이다. 또한 이 시기 풍속도의 복식이나 양식을 보면, 고구려적인 특색이 짙게 풍긴다. 점무늬 옷, 끝단이 주름무늬인 상의, 대님을 맨 바지, 절풍의 모자 등에서 고구려의 전형적인 복식이 나타난다. 그리고 인물의 다리 부분을 사선 방향으로 배치하여 움직임을 표현하는 점 등에서 고구려 특유의 양식이 뚜렷해진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먼저 수로왕이 구지봉(龜旨峰) 상에 내려온 6개의 알 중 하나에서 탄생하고, 다른 알에서 태어난 다섯 동자와 함께 육가야(六伽倻)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6씨족 연맹체의 공동 시조의 제사 의식으로, 수로왕은 그 맹주(盟主)였다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또 그는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와 혼인하게 되는데, 이 아유타국은 중인도(中印度)의 고대 왕국이다.


인두법은 건강한 사람의 몸에 천연두를 앓는 사람의 바이러스를 접종하는 예방접종법인데요. 정약용은 천연두와 홍역 치료서인 『마과회통』을 완성했습니다. 『마과회통』에는 천연두 딱지를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한묘법 등 인두접종법이 기록돼 있는데요. 후에 서양의 우두법 연구 자료를 입수해 우두법의 효과는 물론 접종방법 등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접종하는 일은 당시 받아들이기 힘든 의술이었는데요.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환곡의 진휼 기능이 국가재정을 보충하는 방향으로 변질되었다. 또한 당시 정부의 기관들은 이른바 經費自辦의 원칙에 따라 각 관청에서 소요되는 경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중앙과 지방의 각 기관에서는 다투어 모곡을 확보하려 했고 이를 중요한 재정 수입원으로 삼게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의 중엽에 이르러서 환곡은 삼정 가운데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정부에 대한 민의 저항이 강화되어 갔다.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과 관련하여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세도정치가 시행되었다.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은 대리청정을 받아들이는 조건을 아버지 사도세자의 기행 및 살인행각을 담은 기록을 삭제할 것으로 요구했고 영조 승하 직전 승정원일기가 세초 되었다. 공재 윤두서와 관아재 조영석으로부터 시작된 조선의 풍속화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먼저 김홍도는 1745년 김해 김씨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경기도 안산 지역 부근에서 태어나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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